세 사람의 기묘한 크리스마스
[ Sanda Claus, the strongest man ever ]
Null.
산타할아버지는 알고 계신대 누가 착한 앤지 나쁜 앤지 오늘밤에 다녀가신대.
I.
존 웨인랜드와 그 일당은 폐공장 지하에서 모였다. 크리스마스 이브의 거리는 사람으로 가득했고, 시경 당국은 인원통제를 위해 대부분의 경찰 병력을 크리스마스 마켓에 투입하였다. 덕분에 시 외곽의 폐공장은 감시하는 사람은커녕 개미 새끼 한 마리 얼씬대지 않았다. 루카스 잭슨이 드럼통을 훔쳐와 간이 난로를 만들었고, 웽 모슬리가 거기에 감자를 구웠다. 계획대로라면 새벽 세 시 전까지는 꼼짝없이 여기서 버티고 있어야 했다. 다섯이 돌아가면서 불침번을 서기로 했다. 그러나 범죄의 긴장에 웨인랜드는 쉽게 잠들지 못했다. 허물어진 틈새로 바람이 새어 들어와 불꽃은 자주 사그라들었다. 그는 드럼통 앞에 앉아 잠도 자지 않고 난롯불을 살폈다.
어쩐지 안정되지 않는 마음에 뒷주머니에서 베레타 M9를 꺼내 만지작거린다. 총구의 앞으로 소음기가 붙어있다. 군대에서 노후화되어 폐기 예정이었던 권총을 불법 루트로 쟁여두는 코쟁이들이 있는데, 웨인랜드의 베레타 역시 그쪽을 통해 입수한 물건이었다. 상당히 낡았으나 권총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필요할 때에 격발만 제대로 된다면 새것과 헌것의 구별이 무의미했다. 사실 존 웨인랜드는 오늘 밤 이걸 쓸 일이 없었으면 했다.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아무도 다치지 않고 그렇게 아침을 맞기를 바랐다.
그러나 삶은 원하는 대로 돌아가 주지 않는다. “원하는 대로 돌아가 주었다면, 지금 내가 이러고 있을 필요도 없었겠지.” 웨인랜드의 웃음에는 자조적인 데가 있었다.
시간이 되어 하나둘 눈을 뜨기 시작한다. 존과 그 일당은 새카만 비니를 턱 밑까지 꾹 눌러썼다. 구멍을 미리 잘라놓아 눈과 입이 쉽게 제 자리를 찾을 수 있었다. 각자 총을 챙기고선 차에 올라탔다. 승합차는 새벽처럼 조용히 움직였다. 크리스마스라고는 하지만 새벽은 여느 때처럼 한산했으며, 거리에는 순찰을 도는 경찰의 모습조차 보이지 않았다. 조셉 제퍼슨은 미리 봐두었던 골목 구석진 곳에 차를 대었다. 거기서 목적지까지는 조금 걸어야 했다. 도망칠 때를 대비하여 웨인랜드는 제퍼슨을 차에서 대기하도록 했다.
드넓은 정원이 딸린 으리으리한 저택이었다. 경비원을 두는 대신 각종 센서와 CCTV로 침입자를 경계하고 있다. 그러나 웨인랜드는 조금도 걱정하지 않았다. 오늘을 위해 특별히 해커를 고용하여 저택 경비장치를 일찌감치 무력화시켜두었기 때문이다. 상당한 금액이었지만 크게 불만스럽지는 않았다. 눈앞의 저택에는 그럴 만한 가치가 있었다.
마이클 스미스가 선두에 서고 나머지 셋이 뒤따랐다. 동작감지센서와 열감지센서가 모두 무력화되어 잠입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산책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경비장치를 맹신했는지 창문은 잠겨있지 않았다. 해커를 통해 미리 알아놓은바 금고는 서재에 있고, 부부의 침실과는 거리가 있었다. 웨인랜드는 마이클 스미스와 함께 금고 쪽 방으로 향하고, 루카스 잭슨과 웽 모슬리를 침실 쪽으로 보냈다. 부부를 깨워 금고의 비밀번호를 물어볼 수도 있겠으나, 그들에게는 마이클 스미스가 있다. 웨인랜드가 두 사람을 침실로 보낸 까닭은 그저 ‘잠귀 밝은 누군가가 금고 따는 소리에 깨서 경찰에 신고하지 못하도록’ 감시하라는 것뿐이었다.
금고는 특이할 것 없이 클래식한 다이얼락 구조로 되어있었다. 마이클 스미스는 청진기와 스마트폰을 꺼내 차근차근 번호를 맞춰가기 시작했다. 그가 잠금을 해제하는 동안 존 웨인랜드는 바깥을 경계했다. 바람이 잦아들더니 이내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막소금 같이 굵은 눈발이었다. 안 그래도 고요하던 세상이 더욱 침묵 속으로 빠져들었고, 다이얼 돌아가는 소리가 천둥처럼 귓가를 때렸다. 그 와중에 계단 위에서 인기척이 났다. 웽 모슬리를 서재로 부르고 웨인랜드가 직접 확인하러 올라갔다.
이미 암순응이 끝나 따로 랜턴을 켤 필요는 없었다. 총구를 따라 시선을 움직인다. 방 세 개에 가운데 작은 거실이 있었는데, 거실 벽면에 커다란 벽난로가 설치되어 있었다. 보통의 벽난로가 1층에 달려있는 것을 생각하면 꽤나 특이한 구조다. 벽난로의 위로는 커다란 크리스마스 양말 두 개가 걸려있다. 아마도 아이들을 위한 가짜 벽난로가 아닐까 웨인랜드는 생각했다.
“산타 할아버지예요?” 난데없이 꼬마 하나가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웨인랜드는 서둘러 총구를 내렸다. 아무 말이라도 해야 할 거 같은데, 그 어떤 말도 입 밖으로 나오질 않았다.
II.
꼬마 도빈은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크리스마스 이브였기 때문이다. 마음은 더 놀고 싶었지만 늦게 자는 어린이에게는 산타 할아버지가 선물을 안 준다는 엄마의 말에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꼬마 도빈은 자신의 방 침대가 아니라 2층 거실의 소파에 누웠다. 혹시 산타를 볼 수도 있을 거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산타 할아버지가 들어오실 수 있도록 오늘 하루는 벽난로에 불을 피우지 않기로 했다. 쿠키와 우유도 빼놓을 수 없었다. 크리스마스를 위해 저금해온 돈으로 꼬마 도빈은 제퍼디스 베이커리에서 가장 맛있는 쿠키를 사 왔다. 산타 할아버지가 우유를 마셨다가 배탈이라도 나면 곤란하다. 때문에 우유는 종류별로 마련해두었고, 락토프리 우유와 베지밀에는 포스트잇을 따로 붙여두었다. 이렇게 만반의 준비를 다 해놓고 나서야 꼬마 도빈은 마음 편히 잠들 수 있었다. 도빈의 어머니는 두꺼운 담요를 가져와 아들을 덮어주었다.
새벽에 잠에서 깨었을 때 꼬마 도빈은 분명 산타 할아버지의 기척을 느꼈다. 그렇지만 주변에 산타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고, 벽난로 위의 양말도 텅 빈 채였다. 혹시 몰라서 꼬마 도빈은 2층의 방문을 일일이 열어보았다. 그러나 산타의 모습은커녕 썰매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아쉬운 마음에 다시 소파로 돌아가려는데, 그때, 계단을 올라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꼬마 도빈은 친구에게 들은 이야기를 떠올렸다. 친구는 “요즘에는 굴뚝 없는 집이 많아져서 산타 할아버지가 굴뚝 대신 창문으로 들어온다”고 했다. 믿기 어려운 이야기였지만, 혹시 모르기에 꼬마 도빈은 온 집안의 창문 잠금장치를 풀어두었다. 산타 할아버지가 굴뚝 대신 계단을 올라오는 걸 보면 아무래도 친구 이야기는 사실인 거 같았다.
꼬마 도빈은 서둘러 소파에 누워 담요를 뒤집어썼다. 혹시라도 산타 할아버지가 ‘늦게까지 안 자고 놀고 있는 나쁜 어린이’라고 생각하면 안 되니까. 곧 산타 할아버지를 만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있던 잠기운도 다 날아가 버렸다. 꼬마 도빈은 숨까지 죽여가며 있는 힘껏 자는 척을 했다. 발소리는 점점 가까워지다가 머리맡 언저리에서 급작스레 멎었다. 꼬마 도빈은 가슴이 두근거렸다. 동시에 왜 발소리가 사라졌을까 궁금했다. 어쩌면 자는 척 하는 걸 눈치채신 게 아닐까. 산타 할아버지는 모든 것을 알고 계시니 말이다.
결국 꼬마 도빈은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담요를 걷어차고 몸을 일으켰다. 계단 쪽에 누군가 있었는데, 산타 할아버지라고 하기에는 별로 안 뚱뚱해 보인다. 그래도 혹시 몰라 말을 꺼냈다.
“산타 할아버지예요?” 그러나 대답은 없었다. 뭔가 기분이 이상했다. 꼬마 도빈은 베개 밑에 숨겨둔 아이폰을 꺼냈다. 플래시를 비춰보려 했는데, 그 순간 벽난로 쪽에서 무언가 무너져내린 듯한 굉음이 들려왔다. 굴뚝을 통해 뭐라도 떨어진 듯했다. 벽난로 밑에 깔린 잿가루가 사방으로 날렸다. 꼬마 도빈은 연거푸 재채기했다.
III.
크리스 크링글은 순록의 상태를 살폈다. 겨우내 충분히 먹여두어 털에서 윤기가 흘렀다. 그는 우리에서 한 마리씩 썰매로 데려와 고삐를 채웠다. 대셔, 커미트, 댄서, 큐피드, 프랜서, 도너, 빅슨, 블리츤 그리고 루돌프까지. 물론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언제나처럼 힘든 시간이 될 테지만 잘 부탁한다.” 크리스가 순록의 눈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하면, 순록들은 마치 말귀를 알아듣기라도 하는 듯이 고개를 살짝 끄덕인다. 탈것의 준비를 끝마친 후에야 그는 작업복으로 갈아입는다.
출발 직전에 그는 마지막으로 계기판을 점검했다. 처음 이 자리에 앉았을 때는 썰매에 계기판이 달려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지만, 지금은 제 몸처럼 익숙하다. 계기판에는 보통의 항공기에서 찾을 수 있는 기본적인 여섯 계기가 장착되어있다. 그러나 썰매라는 특성상 턴 코디네이터Turn coordinator는 있으나 마나 하고, 방위계Heading indicator는 GPS로 대체되어 쓸 일이 없었다. 크리스 크링클은 이 두 계기의 점검을 건너뛰고 곧바로 손목시계의 상태를 확인했다. 사실 시계라기보다는 시간팽창계측기에 더 가까울 것이다. 그렇지만 시간을 재는 기능 그 자체에는 변함이 없는 데다가, 시간팽창계측기라는 이름은 너무 길어서, 크리스 크링클은 그냥 시계라고 불렀다.
점검을 끝내고 썰매를 출발시켰다. 아홉 마리의 순록이 지시에 맞추어 속력을 높여나갔다. 이론상 산타의 썰매는 광속의 0.972배까지 달릴 수 있다. 그렇지만 크리스 크링클은 순록의 건강과 체력을 고려하여 0.85배 정도로 속력을 유지했다. 시속으로 환산하면 시간 당 9억 2천 킬로미터를 주파할 수 있다. 크리스마스 이브를 두 배로 팽창시키기에 충분한 속력이다.
이렇게 밤하늘을 달리고 있을 때면 늘 TV에서 본 다큐멘터리가 떠오른다. 산타의 존재를 과학적으로 증명하기 위해 과학자들이 총출동하여 떠들어대는 내용이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산타는 결코 실존할 수 없을 것 같다. 확실히 썰매가 광속의 0.85배로 내달리면 그 충격파만으로도 인류의 존속을 걱정해야 할 테니까. 그러나 산타는 이렇게 실존한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지는 크리스 크링클 본인도 알지 못했다. 전대 산타 니콜라스 케이지—헐리우드 배우와 이름이 같지만, 완전 다른 사람이다—는 실무적인 내용 몇 개만 인수인계하고 죽어버렸다.
“썰매 고장나면 나보고 어떻게 고치라고….” 다음 싼타에게 인수인계할 때까지 고장 없이 쓸 수밖에. 다음 산타가 썰매를 고장내고 ‘이거 어떻게 고치나요’하고 물어보기 전에 얼른 죽어야겠다. 어쩌면 전대 산타가 덜컥 죽어버린 것도 그런 이유일 지 모르겠다. 책임 없는 사람 같으니라고. 크리스 크링클은 잔뜩 투덜거리면서 썰매를 몰았다. 썰매에 선물 분배 자동화 장치가 달려있어서, 예전처럼 일일이 선물 들고 내려갈 필요가 없어졌다.
이제 산타가 하는 일이라고는 썰매를 모는 것 말고는 없다. 지극히 단순한 일이지만 62시간동안 잠들지 않고 썰매를 몰아야 한다. 항공기에는 자동 항법 장치가 달려있지만, 순록에게 그런 걸 바랄 수는 없으니까. 지루한 체력전이었다. 평소에 격투기로 체력을 단련해 두지 않았더라면 산타 따위 진즉에 때려쳤을지도 모르겠다.
어렸을 때 본 만화책에서 슈퍼맨은 귀가 워낙 좋아 지구 어디서라도 자신의 도움을 필요로하면 한달음에 날아가곤 했다. 산타에게도 그 비슷한 능력이 있다. 크리스 크링클은 그 능력을 ‘착한 어린이 레이더’라고 불렀다. 세상 어디에 있더라도 착한 어린이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단박에 알 수 있다.
적어도 크리스마스에는 착하던 나쁘던 모든 어린이가 별 탈 없이 보낼 수 있기를 바랬다. 하지만 삶은 원하는 대로 돌아가 주지 않는다. 크리스 크링클은 급히 고삐를 당겨 속력을 늦추었다. 잔뜩 팽창되어있던 썰매의 시간이 순식간에 세상의 그것을 따라잡는다. 루돌프가 순록 무리를 이끌고 방향을 잡았다.
저택의 위로 굴뚝이 비쭉 솟아있었다. 그을음을 뒤집어쓰겠지만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IV.
발을 잘못 디뎠다. 그는 거의 굴뚝 아래로 떨어지다시피 내려왔다. 등판으로 착지할 때, 벽난로 밑에 깔린 잿가루가 사방으로 날렸다. 검댕 묻은 작업복 빨래 할 생각을 하니 기분이 썩 유쾌하진 않았다. 크리스 크링클은 몸을 일으켰다.
꼬마 도빈은 연거푸 재채기했다. 그러면서도 아이폰의 플래시를 켜는 것은 잊지 않았다. 그의 불빛이 벽난로 쪽을 향했다. 잿가루 연막을 뚫고 사람의 모습이 튀어나왔다. 군데군데 검댕이 묻어있었지만, 분명 새빨간 털옷에 같은 재질로 만들어진 모자였다. 의심할 나위 없는 산타클로스다. 그렇다면 계단을 올라온 저 사람은 누구일까. 꼬마 도빈은 서둘러 플래시 불빛을 계단 쪽으로 돌렸다.
존 웨인랜드는 어느새 총구를 들어 크리스 크링클을 겨누고 있었다. 붉은 옷을 입은 사람이 벽난로에서 튀어나왔다. 그렇다고 그가 산타클로스일 리는 없었다. 존은 동업자가 아닐까 의심했다. 만약 동업자라면 일을 쉽게 해결할 수 있다. 그가 산타 흉내를 내어 꼬맹이를 잘 구슬려준다면 금고 털어서 나온 돈 일부를 나눠줄 용의가 있었다.
“뭐 하는 놈이냐.” 존 웨인랜드가 물었다.
“산타클로스 모르냐. 어렸을 때 한 번씩은 보지 않나. 너 정말 어지간히 나쁜 어린이였나 보구나.” 크리스 크링클이 대꾸했다. 존 웨인랜드는 이것을 협상 결렬 선언으로 보았다. 안타까운 일이었다. 그는 오늘 밤 베레타 M9를 쓸 일이 없었으면 했다. 그렇다고 권총을 장식으로 가져온 것은 아니다. 그는 방아쇠를 당겼다. 연달아 쏘아진 세 발의 탄환이 모두 크리스 크링클의 복부에 명중했다.
소음기는 격발음을 줄여주는 것이지 없애주는 것이 아니다. 아래층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아마도 부부가 깨어난 것이 아닐까 싶었다. 루카스 잭슨에게는 미리 말해두었다. 부부가 깨어나더라도 신고할 낌새를 보이기 전에는 섣불리 침실로 들어가지 말라고. 존 웨인랜드는 머리가 지끈거렸다. 계획한 것에서 너무 많이 벗어나 버렸다. 그리고 크리스 크링클은 쓰러지지 않았다.
“……어떻게?”
“물어보면 대답하는 것이 산타의 철칙이긴 하다만, 이건 나도 원리를 몰라서.” 그렇지만 광속의 0.85배로 내달려도 사람 몸을 지켜주는 게 산타의 작업복이다. 권총 정도는 맞아봤자 별 느낌도 나지 않는다. 크리스 크링클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걸 보여주려고 일부러 먼지 털 듯 손으로 옷 앞쪽을 툭툭 털었다. 존 웨인랜드는 소리를 듣고 올라온 웽 모슬리와 함께 탄창을 전부 비웠다. 그러나 관통은 커녕 옷에는 구멍조차 나지 않았다. 공이가 애꿎은 빈 약실을 때렸다.
“너네 제정신이냐? 어린이 있는데 그렇게 총을 갈기고 싶어? 내 어처구니가 없어서….” 크리스 크링클은 자세를 잡았다. 이제 산타가 하는 일이라고는 썰매를 모는 것 말고는 없다. 그걸 위해 평소 격투기를 통해 체력을 단련해두었는데, 이게 이렇게 쓰일 줄이야.
두 사람은 빠르게 탄창을 갈고 사격을 재개했다. 그러나 크리스 크링클은 아랑곳 않고 달려들었다. 코앞에서 총을 쏴도 죽지를 않아서, 웽 모슬리는 거의 귀신이라도 보는 듯한 표정이었다. 크리스는 그의 얼굴을 향해 훅을 날렸다. 휘청거리지만 쓰러지지는 않았다. 주먹으로 손목을 내리쳐 총을 떨어트리게 한 뒤, 그대로 머리통을 붙잡아 얼굴 한가운데에 니킥을 꽂아 넣었다. 뜨끈한 액체가 바닥 가득 쏟아졌다. 의식을 잃은 듯 그대로 뒤로 넘어간다.
“나쁜 어린이에게는 니킥이 제맛이지. 안 그래?”
“…무에타이?!”
“무에타이라니, 너무하네. 산타散打거든.” 체력을 끌어올리는 데는 유산소 운동이 최고지만 크리스 크링클은 수영이나 자전거, 오래달리기 따위에 영 재미 붙이질 못했다. 그래서 격투기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처음에는 가볍게 권투였다. 이윽고 태권도로 전향했다. 그러다 관장으로부터 중국의 격기 ‘산타’에 대해 듣게 되었다. 관장은 크리스 크링클이 산타클로스임을 알지 못했기에, 그가 산타散打를 말한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듣는 순간 그는 천생연분을 만난 기분이 들었다. 산타가 산타를 연마하는 것은 아주 당연한 진리처럼 보였다.
크리스 크링클은 그동안 연마한 산타 기술을 아낌없이 퍼부었다. 존 웨인랜드는 삽시간에 피떡이 되었다. 시끄러운 소리에 그의 동료들이 2층으로 달려왔으나 차례차례 피떡이 될 뿐이었다. 산타의 작업복은 기본이 붉은색이라 피가 묻어도 잘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검댕이 묻었으니 빨아야겠네.” 크리스 크링클은 지나가는 말처럼 중얼거렸다.
산타가 나쁜 아저씨들을 혼내주는 동안 꼬마 도빈은 소파 뒤에 숨어있었다. 몸을 잔뜩 웅크린 채 얼른 다 끝나기를 바랐다. 싸우는 소리가 잦아들고서야 꼬마 도빈은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폈다. 아이폰 플래시를 끄지 않아서 2층 거실은 충분히 밝았다. 어린이가 봐도 좋을 모습은 아니었다. 크리스 크링클은 재빨리 꼬마 도빈의 눈을 가리고 품에 안아주었다.
“진짜 산타 할아버지예요?” 꼬마 도빈이 물었다.
“그래, 진짜 산타클로스란다.”
“근데 왜 안 뚱뚱해요?” 질문은 재차 이어졌다. 예상치 못한 질문이었다.
“엄마 말씀 잘 듣고 야채를 많이 먹어서 그렇단다. 너도 야채 많이 먹고 운동 열심히 하면 산타 할아버지처럼 될 수 있어.” 어린이가 어떻게 받아들였을지는 모르겠지만, 크리스 크링클은 자신이 내놓은 대답이 썩 만족스러웠다. 위험한 순간이었는데 나름대로 잘 선방했다.
“산타 할아버지는 저 아저씨들이 나쁜 사람이라는 거 어떻게 알았어요?” 다행히 이어지는 질문은 다른 어린이에게서도 몇 번이고 받았던 질문이다. 크리스 크링클은 꼬마 도빈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대답했다.
“산타할아버지는 알고 계신대 누가 착한 앤지 나쁜 앤지.”
덧붙이는 말
이 작품은 황금가지 출판사에서 운영하는 브릿G 덕분에 쓰게 된 단편입니다. 브릿G에서는 작가들이 모여 일정한 주제를 가지고 단편을 쓰는 백일장이 종종 열리는데, 이 작품은 "크리스마스에 찾아온 초대받지 않은 손님에 관한 백일장(줄여서 #굴뚝손님)"에 출품하기 위해 적었습니다.
최초의 발상은 이 작품과 영 딴판이었습니다. 오래된 크리스마스 캐럴 '울면 안돼'로부터 시작한 것은 동일하지만, 산타 할아버지가 선물 값 아끼려고 애들 울리고 선물 안 주는 그런 이야기였죠. 그런데 막상 쓰기 시작하니 너무 아동학대적이지 뭡니까. 그래서 얼른 관뒀습니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써도 되는 것과 안 되는 것을 구별할 줄 아니 다행입니다.
머릿속으로 다양한 가능성을 점쳐보다가 마침내 이 작품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散打claws를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중국의 격투기 중에서는 '산타散打'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중국의 격투기를 하면서 동시에 주먹에서 마치 울버린처럼 클로가 튀어나오는 산타클로스 이야기를 썼습니다. 그런데 크리스마스에 읽기에는 어쩐지 너무 잔인하더군요. 아무리 악당이라지만 클로로 온몸을 찢어 죽이는 건….
그래서 다시 시작했습니다. superhero Santa Claus will never die!! 평소와 달리 그 어떤 플롯도 준비하지 않고 그냥 생각나는 대로 막 써내려갔습니다. 그래도 나름 재미있게 만들어진 거 같아 저는 만족합니다.
여러분 메리 크리스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