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nna Hagenti
[ Return to essence ]
Null.
“소망은 사람 마음 속 가장 깊은 곳을 비춘다.”
- 에이든 A. 블레어
I.
뙤약볕 아래서 가게는 한층 더 우중충해 보였다.
남자는 몇 시간째 박힌 듯 서서 말없이 가게를 응시하고 있었다. 지나가는 행인 몇몇이 그를 보며 수군거렸지만, 그는 신경 쓰지 않았다. 애당초 머릿속이 복잡해 다른 생각이 들어올 틈이 없었다.
두 눈은 가게를 보고 있지만, 남자는 그 너머에 있을 그녀를 생각했다. 미모의 여주인과 그녀를 둘러싼 갖은 소문들. 소문은 정신이 제대로 박혀 있는 사람이라면 코웃음조차 치지 않을 그런 내용뿐이었다. 하지만 남자는 지금 제정신이 아니었다. 소문의 진위를 가리는 건 그의 몫이 아니다.
지푸라기라도 잡아보자는 심정으로 찾아왔건만 쉬이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다가서지도 물러서지도 못하는 것이 그의 사정과 똑 닮았다.
하릴없이 고민하던 그가 결심을 굳힌 건 해 질 녘이 다 되어서였다. 가게에서 불현듯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온 것이다. 그 소리는 귀를 거치지 않고 곧장 머리로 들어오는 것 같았다. 신의 계시 혹은 운명의 부름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남자의 결심을 도왔다. 그는 남은 고민을 털어내듯 과하게 팔을 휘저으며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가게는 온갖 괴기한 물품을 파는 잡화점이었다. 선반마다 개구리 내장 진액이나 송아지 눈깔, 이븐 가지의 가루 따위가 투명한 통에 담겨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었다. 오컬트 문화에 정통하지 않더라도 한 번쯤 시선을 뺏길 법한 풍경이었다. 하지만 남자의 시선은 흔들리지 않고 정면을 향했다.
뼈로 장식한 카운터에는 마녀 옷차림의 여주인이 앉아있었다. 묘한 옷차림이 가게의 분위기와 놀랍도록 잘 어울렸다. 금발에 풍만한 가슴, 거기에 외국인이라는 점이 남자를 놀라게 했지만, 미모는 소문 그대로였다.
“무슨 일로 오셨는지요?”
그녀의 질문에 남자는 ‘과연’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여주인은 그의 방문 목적이 오컬트 물품 구매가 아니라는 걸 정확히 꿰뚫어본 것이다. 숨길 필요가 없겠다 싶어 남자는 순순히 용건을 털어놓았다.
“소문, 소문을 듣고 왔습니다. 당신은 소원을 들어준다고요.”
“어머나, 그런 소문이…. 하지만 전 램프의 요정이 아니랍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설마 안된다거나?”
여주인은 “제 전공은 저주랍니다.”라고 간단히 대답했다. 사내의 얼굴이 대번에 백지장처럼 창백해졌다.
“하지만 소원도 그럭저럭 들어드릴 수 있어요.”
“정말, 정말인가요?”
“그렇답니다. 다만 원하는 대로 이루어질지는 모르겠네요. 소원이라는 게 원래 그런 아이거든요.”
그렇게 말하며 여주인은 방긋 웃었다. 아름다운 미소였지만 남자의 마음은 무겁기만 했다.
“자, 그럼 이야기를 들어볼까요. 어떤 소원을 바라시는 건가요? 돈, 아니면 명예?”
“돈이나 명예 따위를 바랬다면 여기 오지도 않았을 겁니다. 저는 제 아내가 돌아오길 원합니다.”
“아내분이 행방불명 되셨나 보군요.”
“죽었습니다. 하지만 제 아내는 그렇게 죽어서는 안될 여자였습니다.”
이야기하는 동안에 감정이 치오르는지 그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사연이 길어 보이네요. 손님을 오래 세워두는 것도 죄송스러우니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는 게 어떨까요?”
여주인은 가게 구석의 작은 테이블로 남자를 안내했다. 자리에 앉자 고등학생쯤 되어 보이는 단발머리 여자애가 주전자에 차를 끓여와 주전부리와 함께 내어왔다. 악마의 날개를 단 메이드 복장. 아르바이트하는 학생인가 싶었다.
말을 시작하려니 목이 메어와 남자는 차 한 모금을 삼켰다. 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한 모금이 한 잔을, 또다시 한 잔을, 그렇게 주전자를 전부 비우도록 남자는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그 날의 일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하지만 잔의 바닥을 바라보는 눈은 이미 과거의 시간을 좇고 있었다.
남자는 거래처 회사에서 처음 아내를 만났다. 한눈에 반했지만, 평생을 숙맥으로 살아온 탓에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전화번호를 묻기는커녕 말 한마디 붙이지도 못했다. 만약 같은 회사 김 대리가 다리를 놓아주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지 상상도 가지 않는다.
첫 데이트 이후 두 사람은 서로가 서로에게 천생연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후 첫 스킨십, 첫 키스, 첫…. 그렇게 하나둘씩 ‘첫’을 쌓아가며 그들은 서로의 깊숙한 곳을 나누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랑은 빠르게 자라났고, 나중에는 그녀의 뱃속에 2세도 자라났다.
배가 너무 불러오기 전에 서둘러 결혼식을 치렀다. 쫓기는 듯한 결혼식이었지만 나쁠 건 없었다. 식장에 참석한 모두가 두 사람, 아니 세 사람의 앞날을 축복해주었다. 신혼여행으로 간 하와이에서 잊을 수 없는 밤을 보냈다. 어깻죽지에 머리를 베고 잠든 그녀를 바라보며, 남자는 자신에게 이 여자를 안겨준 신에게 감사했다.
지금은 신을 패 죽이고 싶었다.
몇 주 전의 일이었다. 직장에서 돌아왔을 때, 아내는 피를 토한 채 거실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체온계 없이도 고열임을 알 수 있었다. 두 사람의 목숨이 위험했다. 구급차가 왔지만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아내는 사흘 밤낮을 의식 없이 보냈다.
다시 아내가 눈을 떴을 때 세상은 고요히 잠들어있었다. 남자는 사흘 밤낮을 깨어 있었다. 당연히 아내가 일어나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그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무슨 말을 해도 안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내는 자기 몸에 일어난 변화를 눈치챈듯했지만, 믿고 싶지 않은 눈치였다. 그녀가 유산을 알게 된 건 그 날 오후의 일이었다.
남자는 아내가 죽을지도 모른다 생각했다. 실제로도 아내는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 발작했다. 안정제를 맞고도 한참을 버티다 결국 제풀에 지쳐 쓰러졌다. 새근새근 잠든 모습과 끝없이 흐르는 눈물에 남자는 괴로웠다. 그러나 사흘 밤낮을 깨어있었고, 발작하는 아내를 진정시키느라 진이 다 빠진 참이었다. 녹초도 그런 녹초가 없었다. 의사는 몇 시간 푹 잠들 거라 이야기했다. 원투 쨉을 갈기던 수마는 묵직한 스트레이트 펀치를 날렸다. 아랫입술을 깨물며 버티던 그도 당해낼 수가 없었다. 남자는 마치 누전차단기가 일시에 내려가듯 픽 쓰러졌다.
남자가 자는 동안 아내는 화장실에서 목을 매어 죽었다. 의심할 나위 없는 자살이었다. 경찰은 이틀도 안되어 사건을 종결지었다. 고작 몇 주 전의 일이었다. 남자는 아직도 무기력했던 그 날의 자신을 용서하지 못했다.
“그런 가슴 아픈 일이…. 기운 내세요.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도와드릴게요.”
“정말입니까? 그럼 제 아내도?”
“물론이죠. 하지만 공짜는 아니랍니다.”
남자의 얼굴이 급격히 굳어갔다. 은인이 사기꾼 되는 게 한순간이었다. 그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얼마 정도면 되는 겁니까?”
“당신이 가진 모든 걸 주셔야 한답니다.”
“무슨 그런 말도 안되는──.”
“오해하시는 것 같아 덧붙이자면, 이건 운명에 대한 당신의 시험입니다!”
나에 대한 운명의 시험이 아니라 운명에 대한 나의 시험이라니. 남자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운명?”
“예, 운명이죠. 당신이 가진 모든 것과 아내의 목숨을 저울질해보시는 겁니다. 어느 쪽이 더 무거운지. 판단은 손님의 몫입니다.”
어느 쪽이 더 무거운지, 가치 있는지, 혹은 소중한지. 그녀의 말대로 판단은 오롯이 사내의 몫이었다.
“한 마디 더 해드리자면, 자고로 큰 일에는 큰 돈이 따르는 법이랍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여주인은 사악하게 웃음지었다.
II.
남자는 오래간만에 저녁을 먹었다. 허기가 돌아 참을 수 없었다. 도중에 한 번도 게워내지 않은 것은 그 날 이후로 처음이었다. 도중에 몇 번이고 속이 울렁거렸다. 하지만 그것은 평소와는 전혀 다른 울렁거림이었다.
여주인의 제안에 남자는 일말의 고민 없이 답을 내놓았다. 애초에 고민할 필요도 없는 질문이었다. 전 재산을 주고 아내를 살린다. 다만 죽은 사람을 되살린다는 말은 어딘가 미심쩍었다. 여주인을 불신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서른이 넘는 세월 동안 배운 상식이 있다. 죽은 사람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단서조항을 덧붙였다. 돈은 아내가 살아 돌아온 걸 눈으로 본 다음에 주겠다고. 여주인은 어찌 되던 상관없다는 식으로 “저는 괜찮습니다. 그게 좋으시다면 그렇게 하지요.”라고 말했다.
여주인은 하룻밤 자고 일어나면 아내가 돌아올 거라 이야기했다. 밤이 지나면 온다는 뜻이 아니라, 실제로 잠을 자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그녀는 꿈이 현실에 불러오는 다양한 반향에 관해 설명해주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도 남자가 이해한 것은 결국 잠을 자야 아내가 돌아온다는 사실 하나뿐이었다. 때문에 열 시가 채 되기도 전에 일찌감치 침대로 들어온 것이다. 하지만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어제까지만 해도 그의 밤은 좌절과 공포로 뒤섞여 있었다. 의사는 스트레스에 의한 불면증이라 이야기했다. 하지만 남자는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눈을 감아도 아내의 시체가 보이고, 귀를 막아도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미쳤다고 보기엔 정신이 너무나 또렷했다. 어찌나 또렷한지 잠들 수가 없을 정도였다.
그런 상태가 관성처럼 달려들어 남자의 이성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이놈의 아가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잠들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잠들지 못하면 아내와 만날 수도 없다. 그런 생각이 남자를 불안하게 했다. 불안함은 머리를 각성시키고 수면을 방해한다. 이러한 악순환은 자정까지 계속되었다.
양을 세는 건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잔잔한 음악을 틀어놓았지만, 잠들기 전에 음악이 먼저 끝났다. 비발디의 사계와 드뷔시의 베르가마스크 모음곡이었다. 알코올의 힘을 빌리지 않으면 안 되겠다 싶어 남자는 아래층의 부엌으로 향했다.
찬장에서 라가불린 16년을 꺼내들었다. 결혼 당일에 처제가 축복의 말과 함께 선물한 녀석이었다. 돌아올 아내를 기다리며 마시기에 이것만큼 좋은 게 없어 보였다. 평소 스카치 위스키를 마실 때 남자는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위스키 앤 워터를 고집했다. 라가불린 역시 습관대로 위스키 앤 워터로 마셨다. 하지만 아일라 위스키에 물을 섞는 건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온 더 록스를 시도해볼까 했지만 마땅한 얼음이 없었다. 결국은 스트레이트가 답이었다.
아내와의 추억을 안주 삼아 남자는 술잔을 기울였다. 지독하리만치 쓰디쓴 술이 끝도 없이 넘어간다. 알코올은 목을 태우는 데서 멈추지 않고 정신까지 태워버렸다. 휘청거리면서도 이 악물고 버텨온 이성이 희망 앞에 무너진다. 추억과 현실의 단단한 경계가 너무도 쉽게 무너진다. 뻣뻣하게 쳐들고 있던 고개가 술기운에 무너진다. 모든 것이 무너진다. 남자는 그렇게 잠들듯이 무너졌다.
남자는 아내와 함께 노년을 보내는 꿈을 꾸었다. 넓은 해변이 앞에 펼쳐진 그의 집은 넓지 않아도 오손도손한 분위기가 있었다. 남자는 정원에 앉아 노을빛으로 물든 와인을 마시고, 아내는 손녀들을 데리고 동화책을 읽어주었다. 둘째가 되었을 첫째는 아내와 함께 바닷가를 거닐었다. 모든 것이 평화로운 목가적인 꿈. 그 풍경이 너무나 서글퍼 남자는 눈물지었다. 하지만 꿈에서 깨었을 때 그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다. 이유 모를 눈물을 닦으며 그는 머리를 흔들었다. 마치 희미하게 떠오르려는 일말의 이미지마저 깨끗이 털어버리려는 듯이.
정신을 차렸을 때, 닫힌 창문을 통해 회색 어둠이 줄기차게 밀려들고 있었다. 불 켜진 식탁 주변 말고는 전부 어두웠다. 창밖으로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빗줄기가 어찌나 세차던지 세상이 다 휩쓸려가 버릴 것만 같았다. 원래 이렇게 비가 많이 내리는 날에는 해가 중천에 떠도 새벽처럼 어두침침한 법이다. 시간을 가늠해보려 시계를 보았지만, 소용 없는 짓이었다. 시침과 분침이 모두 바닥을 가리키고 있어 분간이 되질 않았다. 밝은 새벽이거나 어두운 저녁이거나 둘 중 하나일 테지. 그렇게 결론 내린 남자는 우울하게 눈을 감았으나, 이내 뭐에 홀린 듯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내가 쓰러졌을 때도, 아내가 남자의 곁을 떠났을 때도 이런 비가 내렸다. 사정없이 유리창을 때리는 빗줄기가 사신의 노크 같았다. 돌아올 수 없는 길을 재촉하는 것 같아 남자는 무서웠다. 계속되는 빗소리에 노이로제가 걸릴 지경이었다. 그런데 아내가 돌아오는 날에도 비가 내리다니. 운명의 장난치고는 썩 나쁘지 않았다.
남자는 남은 술을 모두 하수구에 쏟아부었다. 그리곤 수도꼭지에서 찬물을 틀어 세수하듯 얼굴을 비볐다. 돌아올 아내에게 술 취하고 초췌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옷차림은 특별히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덥수룩한 수염을 깎고 나니 제법 봐줄 만했다.
정신을 차리니 그제야 한동안 방치되었던 삶이 눈에 들어왔다. 아주 난장판이었다. 마치 도둑이라도 들어온 것처럼. 닥치는 대로 치우기 시작했지만 곧 한계에 부딪혔다. 해야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우선순위를 정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있을 때, 무언가가 남자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정체 모를 것이 마당의 빨래 건조대 근처를 배회하고 있었다. 남자는 직감했다. 아내라고. 머리가 판단을 내리기 전에 몸이 먼저 움직였다. 버선발로 뛰쳐나갔다. 그는 거의 울다시피 하며 아내의 이름을 외쳤다. 쏟아지는 빗속에서 방황하던 그녀가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핏기 하나 없고 무표정하지만, 생각했던 대로 아내가 맞았다. 정말로 아내가 돌아온 것이다! 가슴이 벅차올라 아내를 와락 껴안았다. 아내가 품에 들어왔을 때, 남자는 세상 그 무엇도 부럽지 않았다.
하지만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아내가 남자의 목을 깨물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봐도 애교는 아니었다. 살점이 뜯어져 나가고, 피가 분수처럼 솟구쳤다. 남자는 인상을 찌푸리며 한 손으로 상처를 부여잡았다. 두 발이 제멋대로 뒷걸음질 쳤다. 하지만 몇 걸음 못 가 엉덩방아를 찧었다.
남자는 아내를 올려다보았다. 몸이 덜덜 떨리지만, 추위 때문이 아니다. 무표정한 아내의 얼굴과 썩어빠진 아내의 얼굴이 겹쳐 보였다. 무표정해도 생기가 넘치는 얼굴. 썩어빠진 나머지 뼈가 드러난 얼굴. 두 눈이 각기 다른 영상을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동시에 역겨운 썩은 내가 코를 찔렀다. 어떻게 이런 악취를 눈치채지 못했을까.
아내가 입을 벌린 채 천천히 다가왔다. 몸에 남은 알코올과 과도한 출혈로 몸에 힘이 들어가질 않았다. 맞설 수도 도망칠 수도 없었다. 그 순간 남자는 어제 여주인과 나눈 대화를 떠올렸다.
“소원도 그럭저럭 들어드릴 수 있어요. 다만 원하는 대로 이루어질지는 모르겠네요. 소원이라는 게 원래 그런 아이거든요.”
원하는 대로 이루어질지 알 수 없다. 그게 이런 의미였던 건가. 아무리 그래도 죽은 아내가 죽은 채로 돌아올 거라곤 생각도 못 했다. 남자는 웃음이 터져 나오는 걸 참을 수 없었다. 언뜻 미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정신은 그 어느 때보다도 또렷했다. 남자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미래를 선택할 수 있었다. 당연히 그럴 수가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선택하지 않는 것을 선택했다. 그것이 가져올 결말이 너무나 뻔히 보였기 때문이다.
바닥에 주저앉은 남자를 향해 아내가 몸을 날렸다. 피로 번뜩이는 이가 어깨 깊숙이 박힌다.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남자는 통증을 참으며 아내를 꽉 안았다. 다시는 놓치지 않도록 있는 힘껏 안았다.
결국, 아내는 되살아나지 않았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어쩌면 일생을 홀로 외로워하며 살아가야 할지도 모른다. 그보다는 이렇게 함께 같은 길을 걸어가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분명 그럴 거라 남자는 믿었다. 천국에 바닷가가 보이는 작은 집과 질 좋은 와인이 있으면 좋겠는데, 만에 하나 없더라도 남자는 괜찮았다.
아내와 함께라면 어디든 좋으리라. 남자는 미소 지으며 두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