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
“가장 훌륭한 선생은 내가 아니다. 교범 속에서도 찾을 수 없다. 실패한 자들의 기록 속에서 실패의 원인을 찾아라. 명심해라 반면교사야말로 너희가 찾을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스승일 테니.”
용사가 아직 사관생도였을 무렵 들었던 말이다. 군사인문학 교수였던 모 대령은 이 말을 아주 달고 살았다. 신입 생도들에게는 강의에 들어갈 때마다 그 소릴 했다. 용사의 동기들 사이에서는 ‘모 대령의 목을 베면 피가 아니라 반면교사 반면교사가 쏟아질지도 모른다’라는 우스갯소리마저 돌았다. 졸업을 코앞에 두고 동기 하나가 그 우스개 때문에 상관모욕으로 퇴학당했다. 그래도 학생들은 몰래몰래 모 대령에 대한 농담을 주고받으며 낄낄대었다.
그와 별개로 모 대령은 훌륭한 스승이었다. 적어도 모 대령 스스로가 떠들어대었던 그 말을 기준으로 본다면 다시 찾을 수 없는 금세기 가장 훌륭한 스승이었다. 생도를 추행하여 교수직을 잃었고, 야전에서 굵직한 패배를 수차례 기록했다. 왕립 육군이 출범한 이래로 가장 무능한 장교였을 지도 모르겠다. 모 대령의 실패는 교범 속에서도 찾을 수 있었다. 나야무납 강의 패배는 모든 면에서 ‘기록적’이었다. 모 대령은 전장에서 전사하지 않고 근처 야산까지 도망가다가 추격해온 적국의 병사들에 의해 난도질당했다.
발견된 시체는 목이 잘려있었고, 우스갯소리와 달리 흙은 피로 젖어 축축했다. 그래도 영관급 장교라고 대대 하나를 동원하여 꼬박 일주일을 수색하였다. 하지만 어디서도 머리는 찾을 수 없었다. 소문에 의하면 적국의 병사들이 머리통을 들고갔고, 모 대령을 끝장낸 공을 인정받아 넉넉한 포상금과 함께 전선에서 물러났으며, 얼마 후 전역했다고 한다.
“죽을 때까지도 아낌없이 주고 가다니 정말이지 이 시대의 참된 스승이 아닐 수 없다니까.” 용사는 의도치 않게 혼잣말을 뱉었다. 해가 진 옛 수도는 고요했다. 고블린 근위대의 귀에 들릴 만큼 크게 말한 것도 아니었는데, 괜스레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용사는 목을 길게 빼고 주변을 살폈다. 횃대는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용사는 다시 몸을 웅크리고 앉았다.
모 대령의 훌륭한 가르침 덕분은 아니지만, 용사 역시 타인의 실패를 통해 배우는 것을 꺼리지 않았다. 굳이 실패를 통해 배워야 한다면 자신의 실패보다는 타인의 실패를 통해 배우는 편이 더 나을 테니까.
돈과 명예와 은안개를 좇아 용감한 젊은이들이 옛 수도로 향했다. 그러나 돌아온 자는 손에 꼽았다. 덕분에 하나하나 찾아가 이야기를 나누기가 한결 수월했다. 국가적 차원에서는 옛 수도로 향한 젊은이가 모두 돌아오는 편이 좋았을 테지만, 용사는 실패 사례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아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 용사는 구할 수 있는 모든 실패 사례를 분석하여 나름의 계획을 세웠다. 왕자와 옛 수도를 동시에 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고블린 부대는 구리광산의 42번 갱도를 연장하여 왕궁까지 이어지는 땅굴을 팠다. 그러나 광산의 입구가 무너져 갱도를 통해 왕궁에 잠입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렇다고 혼자 몸으로 고블린 근위대를 상대할 수도 없다. 고블린 근위대는 훈련이 잘 되어있기도 했지만, 머릿수도 큰 문제였다. 고블린 근위대가 돌아가며 한 대씩만 때려도 용사는 피곤죽이 되어있을 터였다.
결국, 고블린을 우회하여 들어갈 수밖에 없다. 용사가 해 질 때까지 움직이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었다. 고블린은 태생적으로 밤눈이 어두워 횃대를 들고 순찰을 돈다. 덕분에 야간에는 자신의 위치를 숨기면서 동시에 고블린 근위대의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혹시 횃대의 불빛이 반사될까봐, 용사는 모든 금속 물품에 가죽을 덧대었다.
근위대를 우회하여 붉은 용을 상대한 자는 누구 하나 살아남지 못했다. 그렇다면 붉은 용을 상대하지 않으면 그만 아닐까. 그것이 용사의 주된 계획이었다. 애당초 용은 사냥의 대상 따위로 전락하지 않는다. 은안개로 온몸을 도배하고 달려들어도 마찬가지다. 커다란 아가리에서 내뿜어지는 불길 속에서는 몸뚱이와 은안개가 함께 녹아버려서, 시체와 은안개는 구분되지 않는다. 세상에서 가장 비싼 시체가 되고 싶다면 적극 추천하겠지만, 왕자를 구하기에는 썩 좋은 방법이 아니다.
용사는 재무대신으로부터 왕궁 내부의 구조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재무대신은 설계도면까지 그려가며 친절하게 설명해주었고, 그 설계도면은 지금도 용사의 작은 가방 안에 들어있었다. 그러나 왕궁의 내부로는 별빛 한 점 들지 않아 설계도면은 있으나 마나했다. 용사는 오로지 기억 속의 설계도면에만 의존한 채 천천히 걸었다. 손끝으로 벽의 감촉을 느끼고, 두 귀로는 자신의 것이 아닌 발소리를 들었으며, 눈은 감은 채였다.
느닷없이 사위(四圍)가 밝아졌다. 어두운 방에 불 켜지듯 순식간이었다. 눈을 감고 있었지만 그 정도는 알 수 있었다. 동시에 발아래가 푹 꺼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용사는 휘청거리다가 결국 중심을 잡지 못하고 앞으로 고꾸라졌다.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용사는 고개 들고 눈을 떠 재빨리 주변을 확인했다.
온몸에 불이라도 붙은 듯 시뻘건 용이 똬리를 튼 채 바닥에 턱을 괴고 용사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서 용사는 다시 눈을 감았다. 이게 현실일 리 없었다. 오랫동안 질끈 눈을 감고 있으면 눈으로 가는 혈액이 줄어서 헛것이 보이기도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용사는 충분히 눈을 쉬어준 다음 천천히 눈을 떴다. 그런다고 앞에 있던 용이 도망치거나 없어지거나 할 리가 없다. 용은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서 용사를 쳐다보았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 용사에게는 낯설지 않은 얼굴이었다.
집채만 한 불덩이가 수도에 떨어지고, 곧이어 재앙의 원흉이 수도 한복판에 내려앉았다. 제가 떨어트린 불덩이만큼이나 새빨간 용이었다. 녀석이 아가리를 벌리자 목구멍 너머에서 불길이 솟구쳤다. 무너진 건물 속에서 사람들은 산채로 불에 타죽었다. 아직도 그날의 비명이 귓가에 맴돈다. 그러나 용의 얼굴에서는 일말의 죄책감도 찾아볼 수 없었다. 살충제를 뿌리듯 그저 무심한 살육. 그걸 보고 있자니 토할듯이 가슴이 울렁거렸다. 당시에는 경황이 없어서 그게 무슨 감정인지 살피지 못했다. 용사는 발목을 붙잡는 비명 소리에 귀 닫은 채 왕궁을 향해 달렸다.
그날 죽고 다친 사람이 많다. 마법사와 군 병력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시신 대부분을 수습할 수 있었지만, 그렇지 못한 시신도 있을 것이다. 장례식은 빈찬토쟁 대광장에서 치러졌다. 많은 이들이 영정 앞에서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목놓아 우는 소리가 며칠 동안 이어졌다. 유가족들은 붉은 용을 증오했고, 그때는 용사도 그랬다. 다시 용과 마주하고나서야 용사는 울렁거리는 이 감정이 무엇인지 알 거 같았다.
기야센 화산이 터져 수십만 명이 죽고 다쳤을 때, 분명 누군가는 마그마를 증오했을 것이다. 그러나 마그마에게 복수를 다짐한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마싯타바 해협의 지진으로 쓰나미가 마을을 덮쳤을 때도 그렇다. 기야센 화산 때와 비슷한 수의 사람이 죽고 다치고 고향을 잃었으나, 바다를 증오할 수는 있어도 바다에게 복수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인간의 능력 여하에 따른 문제가 아니라 그냥 불가능하다.
용사가 붉은 용에게서 느끼는 감정은 딱 그런 것이었다. 용은 사냥의 대상으로 전락하지 않는다. 용이 지고의 존재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었지만, 다시 마주하고 보니 그런 게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사람들은 용을 증오했으나 누구 하나 용에게 복수할 생각은 하지 않았다. 용은 생물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자연재해에 더 가까운 존재다.
그런 자연재해가 마법까지 쓰다니. 여분의 바지가 있었다면 참지 않고 시원하게 지려버렸을 텐데. 용사는 바지 한 벌 더 챙겨오지 않은 자신을 원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