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ller x Killer
[ A killer is on the loose in the city. ]
Null.
잃을 것이 있는 사람이 잃게 되는 순간에 대하여.
I.
힘을 준 손아귀를 통해 팔딱거리는 맥박이 느껴진다. 닭살이 돋을 정도로 혐오스러운 기분이었다. 나는 체중을 실어, 목을 부러트릴 듯 졸랐다. 국어 선생의 얼굴이 단번에 새빨개졌다. 내 손목을 잡고 어떻게든 빠져나오려 발버둥 치지만, 소용없는 짓이었다. 배구부의 연습으로 단련된 내 팔근육은 중년의 운동 부족 교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으니까.
숨이 넘어가는 그 마지막 순간에, 국어 선생은 애처로운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돌이킬 수 없는 선을 넘기 전에 그만두라고 그 눈빛은 내게 말하는 듯했다. 그러나 나는 멈추지 않았다. 멈출 수 없었다. 이제 지긋지긋해, 돌이키고 싶지 않았다.
마침내 국어 선생의 눈이 까뒤집어지고, 내 손목을 붙잡고 있던 그의 손에서 힘이 풀렸다. 죽은 것 같았다. 그러나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나는 몇 분 정도 더 그의 목을 졸랐다. 죽은 그의 목에서 맥동은 더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식은땀으로 온몸이 푹 젖어 오한이 들었다.
국어 선생의 시체는 바닥에 축 늘어진 채 움직이지 않았다. 잠들어있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고요한 죽음이었다. 그가 지금껏 내게 해왔던 짓거리를 생각한다면, 질식사는 그에게 과분한 죽음이었다. 그의 죽음은 유혈이 낭자했어야 마땅했다. 찌르고 베고 잡아 뜯어 죽이고 싶었다. 다만, 그렇게 되면 뒤처리가 곤란해진다. 작은 증거도 남겨서는 안 된다.
“이런 쓰레기 때문에 내 인생을 망칠 수는 없지.”
이렇게 될 줄 알았더라면 미리 뉴스 좀 챙겨보는 건데. 나는 진심으로 후회했다. 요즘 정체불명의 연쇄 살인마가 경기도 남부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뉴스가 자주 흘러나왔다. 그 녀석의 특징을 눈여겨보았더라면, 이 쓰레기를 죽인 것도 연쇄 살인마의 짓인 것처럼 꾸며놓을 수 있지 않았을까. 아쉽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일단은 최대한 흔적을 남기지 않는 방향으로 정리할밖에.
교사 휴게실의 뻐꾸기가 울었다. 12시 반, 야자는 진즉에 끝났을 시간이다. 그럼에도 이 늦은 시간까지 내가 학교에 남아있는 까닭은, 이 쓰레기가 죽어야 할 이유와도 일맥상통했다. 국어 선생에게 치명적인 약점을 잡혀버렸다. 그 때문에 지난 반년 동안 나는 그의 요구조건을 모두 들어주어야 했다. 그것은 요구조건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성추행에 가까웠다. 강간하지 않았다뿐이지 그는 온갖 변태적인 행위를 내게 요구했다. 굴욕적이었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 때문에 구강성교도 참아줄 수 있었다. 그러나 오늘 그는 선을 넘으려 했다. 강제로 내 속옷을 벗기고 삽입하려 했다. 내가 저항하자 그는 이번에도 약점을 들먹이며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려 했다. 그 순간 내 이성은 하얗게 불타올랐고, 두 손은 그의 목을 졸랐다. 도중에 이성이 돌아왔지만 멈출 수 없었다. 살인미수는 더 큰 약점이 될 터였다. 나는 그의 목숨 채로 모든 비밀을 묻어버리고자 했다.
야자는 진즉에 끝나서 교내에 남아있는 학생이라곤 나 하나 뿐일 테지만, 나는 조금 더 기다리기로 했다. 혹시 모를 상황이라는 게 있을 수 있으니까. 만약 시체를 들고서 학교를 빠져나가다 다른 학생의 눈에 뜨이기라도 한다면…. 나는 재빨리 도리질을 쳤다. 그런 순간은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문 쪽에서 사진 찍는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같은 반의 범생이가 문간에 서 있었다. 씩 웃고 있는 표정이, 다 봤다고 이야기하는 듯했다. 대화의 여지가 없었다. 나는 벌떡 일어나 녀석을 향해 달려들었다. 미안하지만, 목격자를 남겨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멱살을 잡기 위해 손을 뻗었다. 그 순간 세상이 빙글 돌았다. 아니, 세상은 가만히 있었고, 빙글 돈 것은 내 쪽이었다. 눈 깜짝할 순간에 업어치기를 당한 것이었다. 내가 다시 일어서려고 하자 범생이는 내 목을 꽉 눌렀다. 그렇게 힘을 주어 조르는 게 아닌데도 숨이 턱 막혔다. 내가 캑캑거리자 녀석은 살짝 밀듯이 나를 놔주었다.
“대충 이 정도야.”
“뭐야 너….”
“내 정체를 물어본다면, 대답해주는 게 인지상정! 요즘 한창 유명세를 얻고 있는 희대의 살인자! 그게 바로 나야.”
녀석은 자랑하듯 떠벌렸다.
“우와, 사실 언젠가 한 번쯤은 꼭 이렇게 자기소개 해보고 싶었는데. 사실 아무한테도 말 못하고 죽을 줄 알았거든. 아니면 TV에 대문짝만하게 ‘소문의 연쇄 살인마! 고등학생으로 밝혀져!’ 같은 거로 강제 아웃팅 당하거나. 그런데 그 유명한 이세연에게 내 정체를 알려줄 수 있다니! 알려줘버렸다니! 나 너무 흥분돼!”
범생이의 탈을 쓴 미친놈이었다. 안경 너머에서 뿜어져 나오는 안광이 한없이 서늘했다. 위험한 놈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걸 왜 나한테 알려주는 건데.”
“그래야 공평할 거 같아서. 아니, 사실 하나도 안 공평하지만. 내 말은 증거가 없지만, 네가 살인자라는 건 여기 증거가 있거든. 덕분에 이런 것도 할 수 있지.”
녀석은 덥석 가슴을 잡았다. 불의의 접촉에 화들짝 놀란 나머지 있는 힘껏 귀싸대기를 갈겼다. 이건 예상 못했는지 녀석은 한 방에 나가떨어졌다. 저만치 날아간 안경을 찾을 생각도 없이 벌써 퉁퉁 붓기 시작한 뺨을 어루만졌다.
“역시 배구부의 에이스! 화끈한 스파이크였어. 하지만 나한테 그러면 안 될 텐데. 네 인생이 통째로 침몰할 수도 있다니까?”
“어디 한 번 해보시지. 네 인생이라고 괜찮을 거 같아? 증거가 없다고? 증거는 경찰들이 가지고 있겠지. 연쇄 살인마가 누구인지 특정할 수 있는 DNA 증거 같은 게. 그거랑 네 DNA가 일치하면 너도 끝장이야.”
“아니 그런 이야기가 아닌데. 배구부 에이스에 공부도 잘해서 지덕체를 겸비한 줄 알았는데, 영 꽝이네.”
“뭐가 꽝이란 거야.”
“내 인생이 어떻게 되든 난 상관없어. 감옥? 갔다 오면 그만이거든. 몇 년이 걸리더라도 말이야. 무기징역이나 사형을 받으면 재미없겠지만. 뭐, 그래도 괜찮아. 이미 내 삶에 살아가는 의미 따위는 없으니까. 하지만 네 삶은 아니잖아. 살인자로 내몰리는 거, 감당할 수 있어?”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감당할 수 없다고 인정하는 순간 모든 게 무너져버릴 것 같았다. 절벽 끝에 위태롭게 서 있는 것 같은 기분에, 나는 침묵했다. 녀석은 다시금 내 가슴을 주물렀다. 반사적으로 오른손이 움찔했지만, 방금 전처럼 기세 좋게 따귀를 휘두를 수는 없었다. 녀석은 또다시 씩 웃었다.
“좋아, 이러면 좋잖아.”
“사진 지워달라고 하면 지워줄 거야?”
“그럴 리가. 이게 내 목숨값이자 네 목줄인데 그렇게 쉽게 지워줄 수는 없지.”
녀석은 가슴을 주무르다 말고 국어 선생 쪽으로 갔다. 가만 쪼그려 앉아 시체를 살펴보더니 내게 물었다.
“이거 왜 죽였는지 물어보면 대답해줄 거야?”
“사진 지워주면 알려줄게.”
“모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 같네. 이거 어떻게 처리할 거야? 미리 생각해둔 방법이라도 있어?”
“산 어딘가에 묻어두면 되지 않을까. 가령 사람들이 잘 안 찾는 쪽에 묻어둔다거나.”
“이래서 초짜랑은 말을 섞으면 안 된다니까. 살인의 미학은 뒤처리의 미학이라는 말도 있다고. 그렇게 어물쩍 묻어두었으면 난 벌써 잡혔겠다.”
“그럼 어떻게 하라고.”
“이럴 땐 프로의 손을 빌려야지."
녀석은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한참 통화하더니 만족한 듯 웃으며 전화를 끊었다.
“자, 집에 가자.”
“시체는 어쩌고.”
“내 아는 형이 운영하는 회사에 연락해뒀어. 콜린 앤 웨이드 CCC라고, 이렇게 불법적으로 생긴 시체를 전문적으로 처리해주는 회사거든. 값이 좀 비싸긴 해도 확실하게 처리해주는 사람들이야. 프로페셔널 하달까.”
“비싸다니, 얼마나?”
“글쎄, 잘 모르겠다. 근데 이 시체는 그렇게 너저분하지 않고, 내 부탁이기도 하니까 비싸게 굴지는 않을 거야.”
그렇게 말하며 녀석은 내 손목을 잡아끌었다. 그날, 늑대 피하려다 호랑이 만난 격이었음을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