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ickle down effect
[ Poverty is the faults of society. ]
“3만 원도 넘게 부족한데요.”
늙은 사장은 기계치였다. 인터넷 뱅킹은 고사하고 ATM조차 제대로 쓸 줄 몰랐다. 덕분에 주연은 늘 월급 전액을 현금으로 받고 있었다. 사장은 월급을 봉투에 담아 건네주었다. 봉투에는 언제나 ‘봉급’이라는 한자가 씌어 있었다. 기계치인 사장이 이 한자를 프린트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아마도 매달 붓펜으로 직접 써서 주는 게 아닐까 그녀는 미루어 짐작했다.
주연은 봉투를 받자마자 가방에 집어넣었다. 월급 한 푼 빠지지 않고 제대로 들어있나 확인해보고 싶었다. 그러나 보는 앞에서 내용물을 확인하는 게 어쩐지 무례하게 느껴졌다. 그녀는 사장에게 지난밤의 내용을 인수인계하고 편의점을 나섰다. 집으로 가는 길에 봉투를 꺼내 돈을 세어보았다. 그런데 수가 맞지 않았다. 몇 번을 되풀이해 확인하였으나 액수는 늘거나 줄지 않았다. 월급이 3만 원도 넘게 부족했다. 이것은 사장의 실수인가 고의적 누락인가. 내일 물어봐도 될 일이기는 했지만, 마음이 편치 못했다. 주연은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사장은 돋보기안경을 쓰고서 조간신문을 읽고 있었다. 입구에 달아둔 풍경 울리는 소리에 손님인가 하고 고개를 들었다가, 주연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뭐 놓고 간 거라도 있나, 하는 표정이었다. 그녀는 사장에게 따져 물었다. 최대한 정중한 말투를 쓰려 했으나 억양의 강도는 쉬이 다스려지지 않았다. 그런데 돌아오는 대답이 가관이었다.
“이번 달에 빵구난 거 네 월급으로 메꾸었다.”
뭐 불만이라도 있느냐는 듯한 말투였다. 주연은 뭐라 할 말이 없었다. 해가 떠 있을 동안에는 사장이 홀로 지키고, 야간은 그녀와 한 살 아래의 대학생이 격일로 근무했다. 제가 빵구내지 않았으니 당연히 야간 아르바이트생 둘 중 하나의 잘못일 거라는 논리가 그 말투의 저변에는 깔려있었다. 그 논리는 깨부술 수 없는 아집과도 같은 것이었다. 주연은 하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편의점을 나왔다. 기분이 몹시 좆같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하지만, 야간 수당을 법대로 챙겨주는 곳은 이 동네에 이곳밖에 없었다. 학자금 대출을 다 갚기 전까지는 싫어도 웃어야 한다. 웃는 낯으로 손님을 맞아야 짤리지 않는다.
“빌어먹을 헬조선. 다 좆까라 그래. 씨발.”
요즘 들어서 자꾸만 욕이 느는 것 같다고 주연은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