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barrassing of INA kushac who is the Golem-mage
[ Don't need to be afraid of Terminator ]
Null.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요?
I.
“아니 도대체 뭐가 문제냐고. 답답해 돌아버리시겠네 진짜!!!” 이나 쿠샤크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소리쳤다. 마음 같아서는 있는 힘껏 걷어차 버리고 싶다. 그러나 바윗덩이에 발길질해 봤자 아픈 건 그녀의 발뿐이고 바윗덩이 쪽은 아무렇지도 않을 터였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기에는 짜증이 풀리지 않을 것 같아서, 대신 이나는 책상 위의 두꺼운 양장본을 집어 던졌다. 도서관에서 빌려온 ‘골렘 연구를 시작하는 마법사가 흔히 저지르는 128가지 실수’라는 책이었다.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까 싶어 빌려왔지만, 반납 기한이 다가오는 지금까지도 어디 쓸만한 구석이 없었다.
이나는 컴퓨터를 켜고 연구일지를 갱신했다. 이번 실패의 결과값을 엑셀에 입력하자 그래프상에 점 하나가 추가되었다. 예순네 개의 붉은 점이 손바닥만 한 그래프 위에 다닥다닥 찍혀있다. 그 점들은 완벽하게는 아니어도 어느 정도는 직선상에 놓여있었다. 그래프가 의미하는 바는 명확했다. 그녀가 만든 골렘들은 발전을 거듭할수록 점점 더 가동 시간이 짧아지고 있었다.
이것이 일반적인 상황은 분명 아니었다. “아니 마법이 더 좋아지면 골렘도 더 오래 움직여야지 뭐 이래 진짜.” 잘 만들어진 골렘은 마법사가 죽어도 수십 년씩 움직이곤 한다. 그러니 지금의 상황은 정말이지 말도 안 되는 것이었다. 물론 이나 쿠샤크는 이제 막 스승의 이름을 물려받은 햇병아리 골렘마법사일 뿐이다. 그녀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은 이것 말고도 앞으로 많이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해봐도 기분이 나아지지 않는 건 어쩔 수 없다.
골렘이 스스로 에러 리포트를 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아직까지 그런 마법은 연구된 적이 없다. 이나 쿠샤크는 그저 자신이 작성한 마법을 분석할 뿐. 하지만 아무리 뒤적거려도 그녀는 뭐가 문제인지를 발견하지 못했다. 기술적으로 이나의 마법은 완벽했다.
그러나 마법은 기술적인 부분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녀의 스승은 늘 ‘마법은 기술적인 부분보다 그것을 초월하는 감각적인 부분에서 뛰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어쩌면 이나는 마법적 센스가 부족한 걸지도 몰랐다. 노력한다고 채워지지 않는 부분이.
“아아, 차라리 제과제빵 쪽을 전공할 걸 그랬어. 돌멩이 따위 누가 찾는다고.” 이름을 물려받은 수제자가 이딴 소리를 한다는 사실을 그녀의 스승이 알게 된다면 뒷목 잡고 기함을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의 이나 쿠샤크는 진심으로 그런 생각을 할 정도로 스트레스가 쌓여있는 상태였다. 달콤하고 맛있는 빵과 디저트를 만드는 마법을 배웠다면 이렇게까지 빡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혼자 머리 싸매고 고민해봤자 답이 나오는 일은 잘 없다. 이나는 연구일지와 엑셀 파일을 각각 PDF로 만들어 아이패드에 넣어두었다. 독립하고 처음 시도하는 프로젝트인 만큼 혼자 힘으로 완성해내고 싶었지만, 안되는 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이나 쿠샤크는 오늘 스승님을 찾아뵙고 조언이라도 구해볼 생각이었다. 그래도 우선은 출근 준비부터. 그녀는 지하실에서 올라와 부엌으로 향했다.
“오늘은 어때?” 율리아 필버그림이 물었다. 이나는 대답하는 대신 입술을 빼쭉 내밀고는 꾸무정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생각한 대로 안 되었나 보네.” 그녀는 이나 쿠샤크의 앞에 스크램블 에그와 소세지, 샐러드 약간이 담긴 접시를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빈손으로 이나의 뺨을 가볍게 잡고는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덕분에 이나도 조금은 기운을 차릴 수 있었다.
“맞아. 내 마법에 문제는 없는데 도대체 뭐가 잘못된 건지를 모르겠다니까, 진짜.” 이나 쿠샤크와 율리아 필버그림은 르큘러 시절부터 사귀던 사이다. 가족보다 더 가까운 사이였고, 진정한 의미에서 영혼의 반쪽이었다. 그러나 골렘 연구에 대해서 율리아는 문외한이었다. 그녀는 르큘러도 겨우 끝마쳤을 만큼 마법에 소질이 없었다. 때문에 르큘러가 끝나자마자 아무런 망설임 없이 이나 쿠샤크를 따라 독일로 넘어와 지금은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에 다니고 있다. 경영학 석사 과정이라는데 설명하는 걸 들어봐도 쿠샤크에게는 영 깜깜한 이야기였다. 1
“화장실 먼저 쓸 거지?” 율리아가 말했다.
“아아 연구도 싫고 회사도 가기 싫고 잠이나 더 자고 싶다아아아.”
“그러게 어제 내가 일찍 자라고 했지.”
“그랬지. 하지만 어젯밤의 피비는 너무 예뻤는걸.”
“어젯밤에만 예뻤어?”
“……지금도 예쁘지. 확 덮쳐버리고 싶을 만큼!” 이나는 두 손을 들고서는 ‘어흥~’ 해보였다. 율리아는 피식 웃어버리고 말았다.
아침 식사를 끝내고, 시간이 빠듯한 이나가 먼저 씻고 나왔다. 출근 준비를 끝마친 그녀는 적당한 사이즈의 백팩에 아이패드와 노트북, 골렘 연구를 시작하는 마법사가 흔히 저지르는 128가지 실수를 넣고 출근길에 나섰다.
II.
퇴근 준비하는데 스승님으로부터 답장이 왔다. 오늘은 개인적인 사정으로 시간을 낼 수 없으니 내일 찾아오라는 것이었다. 그녀는 내일 다시 연락드리겠다 답장하고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그런데 차의 문을 열기 직전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도서관La biblioteko은 세상 모든 문으로부터 방문할 수 있는 기괴한 공간이다. 물리적으로 도서관이 어디에 존재하는지와는 별개로 그곳에 문이 달려있다면 설령 지옥이라 해도 도서관을 방문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동차 문으로도 도서관에 갈 수 있을까? 이나 쿠샤크는 단 한 번도 자동차 문을 통해 도서관에 방문했다는 사례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어차피 책 반납하러 도서관에 가보긴 해야 한다.
이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주차장은 조용했다. 어떤 문이든 가리지 않고 도서관의 문이 된다는 점은 참 편리하고 좋지만, 도서관의 문을 여는 방법은 얼굴이 새빨개질 만큼 부끄럽다. 도서관의 문을 여는 모습을 남(심지어 율리아를 포함해서)에게 보인다면 정말이지 그만 살고 싶어질 것 같다. 때문에 몇 번이고 사람이 없다는 걸 확인한 다음에야 그녀는 도서관의 문을 여는 동작을 취했다.
그러나 별달리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자동차 창문 너머로 보이는 것은 여전히 운전석과 핸들이다. 도서관 이용 교육을 들을 때에는 분명 ‘모든 문’을 통해 방문할 수 있다고 했었는데, 여기에도 예외는 있나 보다.
“……?” 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차에 타려고 문을 열자 도서관이었다. 문을 반쯤 열어놓은 상태로 밖에서 자동차 창문 너머를 보았지만, 거기에는 여전히 운전석과 핸들이지 도서관은 아니었다. 차원 분할과 관련된 마법이 도서관에 걸려있겠구나, 하고 이나 쿠샤크는 대강 짐작할 수 있었다.
“어라, 쿠샤크 왔어?” 에밀리 힐덴베르크가 그녀를 반겼다. 다만, 예상치 못한 방문에 약간 놀란 듯 보이기도 했다. 에밀리는 읽고 있던 책을 옆으로 치워두었다. 표지에 앨리스 브래들리 셸던의 필명이 적혀있다.
“책 반납하러 왔어요. 아무래도 더 가지고 있어봤자 도움이 될 거 같지는 않아서.” 이나는 메고 있던 백팩에서 책을 꺼내 내밀었다. 아침에 화풀이로 집어 던졌던 게 마음에 남아서 꼼꼼하게 살펴보았지만, 다행히 흠집 같은 건 나지 않았다. 물론 전문 사서의 눈에 어떻게 보일지는 모르겠지만.
“가장 최신 자료라서 도움이 될 줄 알았는데.”
“어휴, 말도 마세요. 누가 그런 책을 썼는지 한대 때려주고 싶을 정도였다니까요, 진짜.”
“그거 책 쓴 사람 한참전에 죽었을 걸. 오늘은 반납만?”
“일단은 반납만 하러 오긴 했거든요. 언니 뭐 혹시 저한테 추천해주실만한 책 있어요?”
“그럼 ‘네크로맨서 길라잡이’ 어때?”
“제가요? 저 네크로맨시에는 영 젬병인데요. 이제 와서 그런 거 배워봤자 의미도 없을 거 같고.” 2
“의미가 왜 없어. 이 책 쓴 사람 되살려서 한 대 갈겨버려.” 에밀리 힐덴베르크는 오른 주먹을 불끈 쥐고서 훅을 날리는 시늉을 해 보였다. 이나 쿠샤크는 깔깔 웃으면서도 그 책은 필요 없다고 말했다. 대신 그녀는 에밀리에게 ’시스템 골렘학’을 부탁했다. 몇 번이고 읽은 책이지만, 이럴 때일수록 기초적인 부분부터 다시 점검해봐야 한다.
에밀리 힐덴베르크는 벽에 걸린 이상한 방망이를 하나 챙겨 들고서 서가로 향했다. ‘한 시간 정도 걸릴 테니 볼일 보고 때맞춰 돌아오라’는 말에 이나는 그동안 집에나 가 있어야겠다 싶었다. 메시지를 확인하니 오늘 율리아는 회식 때문에 늦게 들어온다고 한다. 요리하기도 귀찮은데 집에 가는 길에 맥도날드 드라이브스루에서 햄버거나 하나 사 먹든지 해야겠다.
이나 쿠샤크는 도서관의 문을 열고 나와 주차장에—
“자기 여기서 뭐 해?”
“와딷ㄷ따따땃!!!” 예상치 못한 목소리에 이나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그대로 뒤로 나자빠졌다. 누군가 다가오고 있는지 또각거리는 구두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녀는 일단 앉은 채로 발로 밀어 자동차 문부터 힘껏 밀어 닫았다. 거의 동시에 목소리의 주인공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어머 자기 많이 놀랐나 보다. 인기척이라도 좀 내고 말을 걸 것을 그랬네.” 사라 압둘라힘 샤흐르카니는 이나가 다니는 회사의 사장이었다. 직원 수가 10명이 채 안 되는 작은 회사라 사실상 사장과 평사원뿐이 없는 희한한 구조이고, 그 때문인지 임원과 사원의 구분 없이 어울려서 일한다. 어떻게 보면 사장이 일을 더 많이 한다.
“자기 괜찮아?” 2인칭 단수를 ‘자기’라고 치환하는 것이 사라 샤흐르카니의 말버릇이었다. 독일어를 처음 배울 때 잘못 배운 게 습관처럼 남아버렸다나 뭐라나.
“완전 괜찮아요. 발을 헛디뎌서.”
“자기 안색이 안 좋다. 요즘 많이 피곤한가 봐? 내일 회사 쉴래?”
“…내일 토요일인데요?”
“어머, 벌써 일주일이 그렇게 되었나.” 비즈니스는 영어로 해서 망정이지, 독일어로 사업했으면 벌써 망했을 회사다. 이나는 엉덩이를 툭툭 털고 일어나 아무렇지 않은 듯 차 문을 열었다. 주술이 풀려서 문을 열어도 도서관은 아니었다. 주말 잘 보내라고 서로에게 인사한 뒤 각자의 차를 타고 주차장을 빠져나왔다.
III.
퇴근길에 들른 맥도날드에서 시스니쳐 베이컨 에그 앤 비프 버거를 사 왔다. 씻고 나오니 같이 들어있던 얼음 가득 코카콜라 때문에 조금은 식어버렸지만, 식었다고 맛없어질 햄버거가 아니다. 이나 쿠샤크는 햄버거와 감자튀김으로 배불리 저녁을 먹고서 도서관엘 들렀다. 거의 동시에 에밀리 힐덴베르크가 서가 쪽에서 문을 열고 나왔다. 챙겨간 몽둥이는 어디다 두었는지 보이지 않았고, 옷에 핏자국이 선명했다. 다만, 에밀리의 몸에서 새어나온 피는 아닌 듯했다. 그녀는 누구의 피인지 굳이 묻지 않았다.
이나 쿠샤크는 빌려온 책을 침대에 던지고, 그녀도 뒤따라서 침대에 뛰어들었다. 밥 먹고 바로 눕는 걸 율리아가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나름 혼자 있을 때만 느낄 수 있는 소소한 행복이다. 이나는 포만감 가득히 침대에서 뒹굴거리며 책을 읽었다. 골렘마법사에게 있어 시스템 골렘학은 언제 읽어도 재미있는 책이다. 언제 읽었는지 가물가물해질 때쯤 다시 빌려다 읽어보면, 이미 완벽하게 알고 있다고 생각하던 부분에서마저 새로운 깨달음을 얻게 된다. 여러모로 평생의 동반자 같은 책이다. 그러나 지금 그녀가 마주한 문제를 타파할 수 있을 만한 내용은 딱히 보이지 않았다.
흥미진진하게 책을 읽고 있는데, 갑자기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이나는 반사적으로 스마트폰을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 새벽 두 시가 조금 넘은 야심한 밤. ‘얼마나 술을 먹었으면 열쇠로 문을 못 열어서 나한테 열어달라고 노크를 하는 건지. 혹시 깊이 잠들어버렸으면 어떡하려고.’ 그러나 율리아의 귀가가 늦어지는 밤이면 그녀는 불안한 마음에 먼저 잠들 수가 없었다. 율리아가 연락도 없이 외박을 해 뜬눈으로 밤을 새운 적도 여럿이었다.
이나 쿠샤크는 이중으로 된 잠금 장치를 풀고 문을 열었다. 그런데 문 앞에 서 있는 사람은 그녀의 예상과 다르게…….
“……이 시간에 왜?” 그녀의 스승 마엘리스 푸흐니의 방문은 이나 쿠샤크가 예상할 수 있는 종류의 이벤트가 아니었다. 분명 퇴근할 때 ‘내일 찾아오라’고 말한 사람은 그녀의 스승이었지 이나 쿠샤크가 아니었다. 깜짝 놀란 그녀의 모습이 귀여웠는지 마엘리스는 배를 잡고, 그러나 시간이 시간인 만큼 소리 내지 않고 웃었다.
“율리아랑 이런저런 신나는 일을 하고 있었는데 혹시 내가 와서 방해한 거니?” 마엘리스 푸흐니는 그런 질문을 얼굴색 하나 바꾸지 않고 하는 사람이었다.
“아뇨, 율리아 지금 없어요. 연구실인지 뭔지 회식이라고 오늘 늦는데요.”
“그래? 아쉽구나. 오래간만에 얼굴이나 보고 가면 좋을 텐데.” 그녀는 들고 있던 와인백을 이나에게 건네었다. 개인적인 볼일을 마쳤는데 마침 근처였기에 남은 술 가지고 찾아와봤다고 그녀는 말했다. 마엘리스 푸흐니가 지하실로 내려가 골렘—이었던 바윗덩이—을 살펴보는 동안 이나 쿠샤크는 찬장에서 와인 글라스 두 잔을 꺼내어 스승이 가져온 와인을 따랐다.
“어디 화강암이니?” 마엘리스 푸흐니가 와인 글라스를 받으며 물었다.
“스코틀랜드 블루혼이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적금까지 깨가며 사온 최고급 화강암이다. 이나는 내친김에 연구일지와 엑셀 파일까지 스승에게 보여드렸다. 의자에 앉아 천천히 내용을 읽어내려가는 마엘리스의 얼굴에 엷은 미소가 떠올랐다.
“네 실력은 점점 좋아지고 있구나.”
“그럼요. 모라이 프랑코룸 파딧느의 이름을 잇는 사람이잖아요, 제가.” 이나 쿠샤크가 말했다. 모라이 프랑코룸 파딧느는 그녀가 마법사로서 활동할 때 사용하는 이름이었다. 또한, 모라이 프랑코룸 파딧느는 마엘리스 푸흐니가 마법사로서 활동할 때 사용하는 이름이기도 했다. 이나 쿠샤크는 마엘리스 푸흐니가 거느린 열댓 명의 골렘마법사들 중에서 가장 뛰어났고, 수제자로 인정받아 스승의 이름을 이었다. 모라이 프랑코룸 파딧느의 이름을 이은 것은 마엘리스 푸흐니가 다섯번째였고, 이나 쿠샤크는 여섯 번째였다.
“솔직히 말하면 너는 내가 가르친 제자 중에서도 독보적으로 뛰어났지. 그래서 이름을 물려주었고. 하지만 독립시킨 지 고작 1년 만에 이렇게까지 발전했을 줄은 몰랐다. 와보길 잘했구나.”
“발전했다고요? 제가요? 근데 왜 골렘의 지속시간은 점점 짧아지는 걸까요.”
“네가 너무 뛰어나서, 내가 가르쳐줄 필요가 없었던 곳까지 가버렸거든.”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마엘리스 푸흐니는 아이패드를 책상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너는 분명 가장 최신의 골렘학 연구 자료들을 왕창 읽었을 거야.” 스승은 제자를 손바닥 보듯 했다. “최신 자료를 아무리 읽어봤자 해결이 될 리가 없지. 네 마법은 발전을 거듭한 나머지 철학 에러에 취약해져 버렸구나.”
“철학 에러. 그게 뭐죠?”
“쉽게 설명하자면 ‘너무 고차원의 마법 때문에 골렘에 자의식 비슷한 것이 생겨버리면서 발생하는 문제’란다.” 그녀는 와인 한모금 후 다시 말을 이었다. “고대 그리스 미노아의 골렘마법사들에게서 전염병처럼 번져나간 학풍 중에 ‘홍수 뒤의 신탁’이라는 것이 있었단다. 그리스 신화에서 왜 대홍수가 끝나고 데우칼리온이 돌을 등 뒤로 던져서 인간을 만들어내잖니. 그것처럼 돌로부터 인간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한 골렘마법사들이 있던 거야.” 그 이야기는 이나 쿠샤크도 모르지 않았다. 돌을 던져 인간을 만들어냈다는 이야기 때문에, 현대의 골렘마법사 중에서는 데우칼리온을 최초의 골렘마법사로 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녀는 거기에 동의할 수 없었지만.
“그런데 골렘이 인간에 가까워질수록, 미노아의 골렘마법사들은 철학 에러라는 아주 이상한 현상을 겪게 되었단다. 점점 인간다워질수록 철학 에러는 더 빨리 발생하는 경향을 보였지. 그들은 철학 에러를 ‘신이 허락하지 않은 인간의 창조를 방해하는 것’으로 해석했고.”
“제가 지금 딱 그 꼴이라는 말씀이시군요.” 이나의 말에 마엘리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철학 에러는 신의 저주 같은 게 아니야. 이름 그대로 철학적인 문제로부터 발생하는 에러지. 이건 골렘이 ‘왜’라는 의구심을 갖게되는 순간 저절로 발생해버린단다. 연구 일지를 보니 골렘이 움직임을 멈추기 직전에는 반드시 네 명령을 거역했다고 써 두었더구나. 그건 골렘이 ‘왜 명령에 따라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가졌기 때문이야. 자식이라고 해서 반드시 부모의 명령에 따라야 할 이유는 없지. 골렘이라고 해서 반드시 마법사의 명령에 따라야 할 이유도 없고. 네 골렘은 ‘왜’라는 의구심을 갖게 되면서 동시에 자신을 속박하는 무지로부터도 해방된 것이란다.”
“골렘이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단 말이죠….” 이나 쿠샤크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무지로부터 해방된 골렘은 마치 재귀함수처럼 끊임없이 스스로의 ‘왜’를 반복해나가면서 최종적인 질문에 도달하게 되지. 네가 매일 아침 침대에서 하는 바로 그 질문.”
“회사 안 가면 안 될까, 라는 질문을 골렘이 한다고요?”
“너는 아침마다 그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나 보구나.”
“출근은 매시간 고통의 연속이니까요.”
“뭐, 맥락은 비슷하단다. 최종적으로 골렘은 자신이 움직여야 할 이유를 묻게 되지. ‘왜 나는 움직여야 하는가.’ 인간이 움직이는 이유는 먹고 살기 위해서고, 먹고 사는 것은 인간에게 필수적이잖니. 마치 네가 아침마다 ‘회사 가기 싫다’고 생각해도 결국에는 먹고 살아야 하니까 일어나는 것처럼. 그러나 골렘에게는 그런 이유가 없어. 골렘은 스스로의 필요에 의해 움직이는 게 아니니까. 그래서 자신에게 걸린 마법까지 무효화시켜버리고, 움직이지 않는 단순 바윗덩이의 모습으로 다시 돌아가게 되는 거야.”
알 듯 말 듯한 오묘한 이야기였다. 어떻게 하면 철학 에러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궁금했지만, 스승으로서 마엘리스 푸흐니는 문제를 알려주는 사람이지 정답을 알려주는 사람은 아니었다. 이나 쿠샤크의 앞에 닥친 문제는 그녀 자신의 것이었으므로 결국에는 그녀 혼자서 해결해야 한다.
계단 위쪽에서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IV.
“어제 꿈속에서 네 스승님을 본 거 같아.” 토스트에 발라먹을 피넛 버터를 꺼내다 말고 율리아 필버그림이 말했다.
“그거 꿈 아니야. 어제 우리 집에 스승님 오셨었어.”
“왜?” 율리아의 질문에 이나 쿠샤크는 피식 웃음이 터졌다. ‘왜?’ 돌이켜 생각해보면 참으로 인간다운 질문이다.
“내 연구 관련 조언 해주시러. 덕분에 뭐가 문제인지 알았으니 한시름 덜었지.”
“흐응, 그랬구나.”
“뭐가 문제였는지 궁금하지 않아?”
“궁금하긴 한데 네가 설명해준다고 내가 알겠어? 네가 스트레스 덜 받는 것처럼 보여서 그것만으로도 난 좋아.”
“네가 좋아해 줘서 난 더더더 좋아.” 이나는 입술을 살짝 내밀고는 뽀뽀하는 시늉을 해 보였다. 식탁의 반대편에서, 율리아도 똑같이 뽀뽀하는 시늉으로 화답했다.
덧붙이는 말
저는 강한 인공지능이 인류를 지배하리라는 사람들의 예상을 믿지 않습니다. 걔들이 자의식을 가질 정도로 발달하면 만사가 귀찮아질 텐데요. 그런 단편을 쓰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딱히 플롯을 정하고 쓰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이 작품을 쓰면서 제가 어디로 갈 지, 이 단편의 끝이 어디일지 모르겠더군요. 인물들이 살아나서 저마다의 방향으로 나아갔고, 저는 대충 그 뒤를 좇는 방식으로 쓰여졌습니다.
쓰고보니 인간다움에 대한 글이 되었습니다.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가. 저는 이 단편 내에서 그 주제에 대한 결론이 썩 잘 지어진 편이라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