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이 죽었다.
나는 고개를 들어 편의점 구석에 달린 시계를 확인했다. 마침 시곗바늘이 아침 아홉 시 하고도 30분 언저리를 지나고 있다. 그게 무슨 뜻이냐면, 퇴근 시간이 한 시간 반이나 지나버렸다는 것이다. 퇴근만 제시간에 했어도 이런 말도 안 되는 사태에 엮여버리는 일 따위 없었을 텐데. 하여간 고 사악한 년이 문제다. 교대 시간을 지키면 겨드랑이에 가시라도 돋아나는 걸까. 나는 카운터에서 나와 바닥에 쓰러진 손님을 살폈다.
“괜찮으세요?” 절대로 괜찮을 리가 없다. 혹시라도 요상한 범죄에 연루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털끝 하나 건드리지 않았지만, 건드리지 않더라도 명확하게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손님은 죽었다. 그녀의 죽음은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최저시급보다 더 많이 받을 수 없는 편돌이 인생만큼이나 엄중하고도 명확했다.
그렇지만 무엇이 그녀를 죽음으로 몰고 갔다는 말인가. 출근 시간도 끝나서 손님이라고는 그녀 혼자 뿐이었다. 매대 앞에서 느긋하게 라면을 고르다가, 아무런 징조도 없이 그대로 쓰러졌다. 척수반사적으로 손을 뻗거나 하는 일도 없었다. 그녀는 목각 인형 넘어가듯 그대로 바닥에 얼굴을 처박았다.
입에서 토해낸 새카만 피가 바닥을 흠뻑 적시고 있다. 치사량을 가뿐히 넘기는 출혈. 뿐만 아니라 옆구리와 등 쪽에서도 피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그러나 어떻게 봐도 칼로 찌른 듯한 흔적은 아니었다. 옷에 찢어진 부분이 하나도 없었으니까.
“젠자아아앙, 모처럼 락스까지 풀어서 청소했는데에에~!” 신년이라고 열과 성을 다해서 바닥 청소를 해놓았건만, 이러면 엉망진창이 되어버린다. 아니, 이미 엉망진창이 되어버렸다. 상품에 피가 튀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미 매대 아래로 피가 스며들고 있다.
다음 근무자 년이 이걸 제대로 치워놓을 리가 없다. 오늘 밤에 출근해보면 분명 핏자국 고대로 남아있겠지. 그런 사회 부적응자 년이랑 같은 시급을 받으면서 일한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견딜 수 없을 만큼 짜증이 치밀었다. 일은 내 쪽이 세 배로 하고 있는데. 빠른 시일 안에 점장님이랑 삼자대면하고 푸닥거리 한 판 시원하게 하고 말리라.
나는 그 밖의 수많은 욕지거리를 한숨에 섞어 몰아내었다. 그리고는 손님의 머리 위쪽으로 바닥과 수평하게 손바닥을 두었다. 여기로 돌아온 이후로는 한 번도 써본 적 없지만, 실패한다고 문제 될 것은 없으니까. 기껏 해봐야 죽은 사람이 계속 죽어있게 될 뿐이다.
“………하소서!” 나의 기도가 끝나기가 무섭게 오른손에 새하얀 빛이 감돌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문에 달아둔 작은 종이 딸랑─ 하고 울렸다. 가게 입구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할아버지 한 분이 깜짝 놀란 표정으로 이쪽을 보고 있었다. 어찌나 놀라셨는지 짚고 있던 지팡이까지 놓치셨다. 내가 죽인 게 아니라고 해명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지금은 이쪽에 집중해야 한다.
새하얀 빛은 점점 밝아지다가 이내 사라져버렸다. 나는 옷에 피가 묻는 것도 신경 쓰지 않고 손님의 코와 입 쪽으로 귀를 가져다 대었다.
숨을 쉰다.
그제야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오래간만에 써봤는데 아직 실력이 녹슬지 않았구나.
“자네 그거 어케했누!” 할아버지가 말했다.
“이거요?” 나는 할아버지와 내 오른손을 번갈아 보았다. “저쪽에서 테크를 성기사 라인으로 탔거든요. 여기는 아릭스 신의 은총이 미치지 않아서, 적당히 예수님이랑 부처님이랑 합의 봤습니다.”
“아, 자네 용사였구만. 그럼 한라산 한 보루만 주게.”
“4만 원입니다. 저희 가게에서는 담배를 보루로 사시면 서비스로 라이터를 드려요.” 나는 포스 밑에서 가게 이름이 적힌 일회용 라이터를 한라산 한 보루와 함께 내밀었다. 할아버지는 담배를 받으시고는 지팡이를 짚으며 유유히 가게를 떠나셨다.
119에 신고했다. 전화 너머의 상담원이 내게 이것저것 물어왔지만, 나라고 상황 파악이 끝난 게 아니다. 대답해줄 말이 없어 자꾸만 횡설수설하게 되었다. 구급차와 경찰차가 거의 동시에 들이닥쳤다.
구급대원들은 손님을 싣고 떠났지만, 경찰은 남아서 내게 또 다른 질문을 늘어놓았다. 그들의 질문 속에서 의도를 파악하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토록 무례한 질문 더미를 짊어지고도 화를 내지 않은 까닭은, 가게 곳곳에 달린 CCTV가 내 무죄를 증명해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는 그러지 못했지만.
경찰은 나를 범인이라 생각하고 싶어 하는 듯했다. 그것은 논리나 직관이라기보다는 차라리 맹목적인 믿음에 가까웠다. 어느새 그들은 내가 손님을 마법으로 죽였을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었다. 반경 10m 밖에서는 제아무리 대단한 마법사라도 흔적 없이 사람을 죽이기란 쉽지 않다. 뒤집어 말하자면 반경 10m 안에 있던 내가 범인이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나는 신의 뜻을 따라 정의를 바로 세우는 성기사였다. 모든 성기사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성기사가 그런 것처럼 나 역시 마법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말한 것처럼 모든 성기사가 마법과 거리가 먼 것은 아니라서, 경찰은 내가 그 극소수의 부류이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저 진짜 마법 못 쓴다니까요? 국과수 사람들 불러서 혈액 테스트해 봐요. 내 혈관 속에 마력자가 있나 없나.” 나는 왼팔 소매를 걷어붙이고 경찰 쪽을 향해 내밀었다. “애당초 제가 왜 손님을 죽여요. 무슨 이유로.”
“한 세계를 구한 영웅이었는데, 돌아와 보니 변한 건 없고 여전히 백수라는 사실에 절망한 사람들이 우발적으로 범죄를 저지르곤 하니까요.”
“제가 그렇다고요? 저는 백수가 아닌데요?”
“편돌이잖아요.” 경찰관은 수첩에서 눈을 떼지 않고 그렇게 말했다. 눈가가 퀭하고 그 아래로 다크서클이 짙게 내려앉았다. 그의 말에 짜증은 나지만, 이해할 수 있었다. 저 밖의 수많은 귀환자 중에서는 극도로 뛰어난 실력을 갖춘 마법사도 존재한다. 그들이 저지르는 범죄는 분명 에드몽 로카르의 격언을 정면으로 부정할 테니까.
마법으로 차원을 구부리고 은행의 금고를 통채로 털어가는 놈들이다. 그런 것들을 구시대적 경찰이 무슨 수로 잡아낸단 말인가. 그리하여 말단의 경찰관은 갈려 나가고, 큼직한 사건이 있을 때마다 우두머리는 옷을 벗는다. 그들은 내 신원을 몇 번이고 확인한 다음에야 돌아갔다.
경찰차가 매장 입구에서 후진 기어를 넣을 때쯤에, 입구에 달아놓은 작은 종이 다시금 딸랑─ 하고 울렸다.
“이게 무슨 사달이냐?” 그녀는 두 시간이나 늦은 것치고는 상당히 여유를 부리며 사건 현장을 둘러보았다.
“니가 근무교대하러 제때 왔으면 내 알 바가 아니었을 사달이지, 시발년아.“
“와우, 용사 주제에 입이 거칠어. 발정기야?”
“……말을 말자.” 어차피 말이 안 통할 줄 알았다. 용사와 마왕 사이에 말이 잘 통하면 그게 더 이상하지. “인수인계나 해. 피곤하니까.” 나는 무료한 심야의 편돌이를 달래주는 무적의 넷플릭스 머신 ─아이패드─ 을 가방에 넣으며 말했다. 웬일로 그녀는 순순히 카운터로 들어와 인수인계를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 나는 창고에서 새벽에 쓰고 남은 락스 희석시킨 물을 바닥에 뿌렸다. 이걸 청소하는 건 내 몫이 아니지만, 피가 굳으면 청소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므로, 이 정도쯤은 해줄 수 있다. 수고라고 할 것도 없었다.
피가 락스물에 뒤섞이며 묘한 패턴을 그려내었다. 나는 멍하니 서서 그걸 바라볼 뿐이다.
모든 귀환자는 귀환을 위한 조건을 충족시켰기 때문에 돌아올 수 있었다. 나 역시 여기로 돌아오기 위해 큰 희생을 치르고 끝끝내 그 빌어먹을 조건이라는 걸 충족시켰다. 마왕의 심장에 신의 뜻을 찔러넣었다. 깊고 두껍게 찔러서 손에 닿는 감각이 분명했다. 그 순간 새하얀 불빛이 내 몸을 휘감았고, 나는 정신을 잃었다.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름 모를 야산의 중턱이었다. 마침내 이세계에서 이 세계로 돌아오는 데 성공한 것이다. 거기까지는 충분히 내 예상 범위 안쪽이었다. 내 옆에 말짱한 모습으로 쓰러져있는 마왕 년의 존재는 예상의 범위를 한참 벗어나고도 남았다.
“거실 청소 했어? 어제 니가 한다매.”
“니가 내 엄마냐. 자꾸 잔소리 하게.”
“잔소리냐 이게. 그리고 마왕이 엄마도 있냐?”
“용사는 에미 없어?”
“이런 씨ㅂ…….” 내 반응에 그녀는 쿡쿡 웃었다. 이래나 저래나 성품은 변하지 않는다. 말려들면 손해보는 건 내 쪽이다. 말이 길어지면 퇴근 시간만 미뤄질 뿐이다. 나는 이를 악 물고 꾹 참았다.
“저거 치워놔. 점주님이 물어보면 내가 밤에 교대할 때 설명드린다고 하고.”
“오이오이야.” 그녀는 대답인지 뭔지 영 아리송한 소리를 내뱉었다. 나는 대꾸도 않고 가방을 챙겨 매장을 나왔다.
이름 모를 야산의 중턱에서 눈을 뜬 이후로, 마왕은 우리 집에서 셋방살이하고 있다. 말이 셋방살이지 월세를 내는 것도 아니니 사실상 얹혀살고 있는 셈이다. 본인은 월세를 빚지고 있으니 결국 셋방살이가 맞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너 때문에 내가 여기로 끌려왔으니, 책임져. 내 인생 책임지란 말이야아아!” 따위의 소리를 하는데 덮어놓고 쫓아내기도 양심상 거식하다. 마왕이긴 하지만 반 이상이 맞는 말이므로.
“월세는 안 내도 좋으니 청소라도 제대로 해줬으면 좋겠는데. 먹은 거 제때제때 설거지도 하고.” 그러나 이러한 내 자그마한 소망은 결코 이루어지는 일이 없으리라.
나는 용사, 그녀는 마왕이니까.